연애 게시판에서 반복해서 보이는 질문이 있다. 여러 글의 내용을 합쳐 보면 이런 식이다.
올해도 크리스마스를 혼자 보내기는 싫다. 12월 24일까지는 여자친구를 만들고 싶다. 친구들에게 소개팅을 부탁해 놨고, 앱도 깔았다. 지금부터 7주 남았는데 그 안에 가능한가. 뭘 어떻게 해야 하나.
날짜를 박아 두는 질문은 연말에만 있는 게 아니다. 2025년 2월, 한 상담 사이트에 올라온 질문의 제목은 “25세 모쏠아싸 남자입니다.. 올해 안에 모태솔로 탈출하고 싶은데”였다. 2월에 이미 ‘올해 안에’라는 선이 그어져 있다. 공식은 같다. 특정 날짜 + 그 전까지 + 여자친구.
연애를 하고 싶다는 글이 아니다. 어떤 날짜 전에 연애 중인 상태가 되어 있어야 한다는 글이다. 이 둘은 다르다. 그리고 그 차이가 소개팅 자리에서 꽤 큰 일을 한다.
돌아오는 답은 데드라인을 건드리지 않는다
하나는 응원이다. 목표를 세웠으니 이번엔 밀어붙이라는 식이다. 위의 2월 질문에는 연애 유튜브로 대화 기술을 익히고 취미 모임으로 인간관계를 넓히라는 답이 달렸다. 7주짜리 계획표가 하나 더 생긴다.
다른 하나는 꾸짖음이다. 날짜 같은 데 매달리지 말라는 식이다. 틀린 말은 아닌데, 왜 버려야 하는지는 말해 주지 않는다. 그래서 읽는 사람은 ‘집착하는 나’를 하나 더 미워하게 될 뿐 데드라인은 그대로 남는다.
두 답 모두 데드라인을 동기의 문제로 다룬다. 좋은 동기냐 나쁜 동기냐. 하지만 데드라인이 정말 문제가 되는 곳은 결심하는 책상 앞이 아니다. 상대와 마주 앉은 자리다.
49%와 51.4%
숫자 하나를 보자.
2025년 5월, 데이팅앱 위피의 운영사 엔라이즈가 사용자 1,000명에게 연애 의향을 물었다. 남성에게서 가장 많이 나온 답은 “하고 싶고 적극 노력 중”으로 49%였다. 여성에게서 가장 많이 나온 답은 “하고 싶지만 적극 노력은 안 함”으로 51.4%였다.
데이팅앱 사용자라는 표본을 기억하자. 이미 연애에 관심이 있어서 앱까지 깐 사람들이다. 그런데도 가장 많이 고른 답이 성별마다 다른 칸에 몰렸다. 남성 응답자는 ‘노력 중’에, 여성 응답자는 ‘하고 싶지만 적극 노력은 안 함’에.
이걸 “상대는 연애에 관심이 없다”로 읽으면 틀린다. 가장 많은 답이 ‘하고 싶다’인 것은 양쪽이 같다. 이 조사가 보여 주는 것은 이 앱의 여성 응답자 절반 남짓이 ‘적극 노력’이라는 칸을 고르지 않았다는 사실까지다. 소개팅에 마주 앉을 한 사람의 마음을 이 숫자로 맞힐 수는 없다. 다만 날짜를 세고 있는 쪽이 당신 하나뿐일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
그 사람에게 크리스마스는 그냥 크리스마스다. 당신에게는 마감이다. 같은 테이블에 앉아 있지만 시계가 다르게 간다.
‘마지막 기회’가 자리에서 하는 일
데드라인이 있으면 더 열심히 하게 되고, 열심히 하면 더 잘 된다. 시험공부라면 맞는 말이다. 소개팅은 시험이 아니다. 혼자 더 열심히 해서 되는 일이 아니라, 두 사람의 속도가 맞아야 되는 일이다.
7주 데드라인을 안고 자리에 앉으면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순서대로 보자.
첫째, 이 만남이 ‘마지막 기회’로 보인다. 크리스마스까지 소개팅이 몇 번이나 더 들어오겠나. 아마 한두 번. 그러면 지금 이 자리가 올해의 거의 전부가 된다. 연애 커뮤니티의 한 초보용 가이드 글이 짚은 대로, 상대에게서 마지막 기회라는 압박을 느끼는 순간 대화는 굳는다.
둘째, 평가가 시작된다. 상대가 마음에 들면 더 빨라진다. 한 커뮤니티 댓글이 정확하게 적었다. 상대가 마음에 들면 바로 결혼과 미래를 상상하게 되고, 그래서 할 말이 없어진다는 것이다. 눈앞의 사람과 대화해야 하는데 머릿속은 12월 24일 저녁에 가 있다.
셋째, 그 급함이 상대에게 보인다. 마크 맨슨의 『절박함을 버린 남자들』(한국어판 2024)은 3장 제목이 “절박함은 결국 드러난다”이다. 숨기려고 해도 드러난다. 상대 입장에서 보면, 나라는 사람이 궁금해서 앉아 있는 사람과 날짜를 채우려고 앉아 있는 사람은 다르게 보인다.
에펨코리아의 한 모쏠 실패기 글타래에는 “모쏠의 최대단점이 혼자만 급한거인 것 같음”이라는 말이 있다. 혼자만 급하다는 감각을, 겪어 본 사람이 직접 적은 말이다.
크리스마스는 핑계고, 걱정은 다른 것이다
그런데 왜 크리스마스일까. 12월 24일에 여자친구가 없다고 해서 실제로 일어나는 일은 없다. 그날 저녁에 혼자 있는 것뿐이다. 작년에도 그랬고 별일 없었다.
진짜 걱정은 날짜가 아니다. 올해도 아무것도 안 바뀌었다는 느낌이다. 1월에 결심했고, 여름에 다시 결심했고, 이제 11월이다. 연말은 1년을 채점하는 시기다. 크리스마스는 그 채점표에 날짜를 붙여 준 것뿐이다. “올해 안에”가 안 되면 “올해도 못 했다”가 되고, 그게 “나는 안 되는 사람인가”로 넘어간다.
그러니까 데드라인은 사실 자기 자신을 향한 것이다. 상대와는 아무 상관이 없다. 상대는 당신의 올해 채점표에 들어 있지 않다. 그런데 자리에 앉으면 그 사람이 채점표의 마지막 칸이 된다. 상대가 그걸 눈치채지 못하기를 바라는 것은 무리다.
나의 경우
나도 사람과 대화하는 것 자체가 어려웠던 쪽이다. 그런데 돌아보면 연애는 가볍게 시작됐다. 외모에 대한 기대치를 어느 정도 내려놓자 연애 자체는 어렵지 않았다. 가장 먼저 바뀐 생각은 “연애는 어려운 것이 아니다”였다.
이번 주에 할 일
세 가지만 스스로 물어보자.
- 12월 25일 아침에 여자친구가 없으면 실제로 무슨 일이 일어나나. 한 문장으로.
- 지금 소개팅을 잡으려는 이유가 “그 사람이 궁금해서”인가, “날짜가 다가와서”인가.
- 이번 만남이 잘 안 되면 다음 만남은 언제인가. 답이 “없다”라면 그게 압박의 출처다.
이번 주 최소 행동은 하나다. 누군가에게 소개를 부탁하거나 앱 프로필을 쓸 때, “크리스마스 전에”와 “올해 안에”라는 말을 뺀다. 입 밖으로 내는 문장에서 날짜를 빼는 것이다. 날짜가 빠지면 부탁의 톤이 바뀌고, 부탁의 톤이 바뀌면 자리에 앉는 자세가 바뀐다. 소개팅은 1월에도 들어온다. 2월에도 들어온다.
연애가 어려운 게 아니다. “크리스마스 전에”라는 데드라인이 연애를 어렵게 만든다.
이 이야기는 가이드 12장에서 이어진다.
출처
- 엔라이즈(데이팅앱 위피) 사용자 설문(2025.05, 1,000명): 남성 연애 의향 최다 응답 ‘하고 싶고 적극 노력 중’ 49%, 여성 최다 응답 ‘하고 싶지만 적극 노력은 안 함’ 51.4% — 유니콘팩토리 2025.06.12
- 마크 맨슨, 『절박함을 버린 남자들』(너를위한, 2024.12) 3장 “절박함은 결국 드러난다” — 교보문고 eBook
- 커뮤니티 집계: 에펨코리아 연애상담 ‘모쏠’ 제목 검색, 디시인사이드 고민 갤러리 ‘모쏠’ 검색, 네이버 지식iN ‘모쏠 남자 연애’ 검색